2026년 2월, 미국 경매회사 골딘(Goldin)의 온라인 경매에서 포켓몬 카드 한 장이 1,649만 2,000달러, 한화 약 238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트레이딩 카드 경매 사상 최고가입니다.
카드의 이름은 ‘피카츄 일러스트레이터(Pikachu Illustrator)’입니다.
1998년 일본 어린이 잡지 〈코로코로 코믹〉이 주최한 일러스트 공모전에서 수상자들에게 기념으로 나눠준 카드입니다. 캐릭터가 인쇄된 작은 종이 한 장에 어떻게 수백억 원의 가치가 붙게 된 것일까요. 판매용으로 제작된 카드가 아닌 데다 발행 수량도 적어, 시간이 흐를수록 온전한 상태로 남은 카드는 더욱 귀해졌습니다. 여기에 포켓몬을 향한 팬들의 오랜 애정이 더해지면서 단순한 종이 이상의 수집품이 된 것이죠.

이처럼 수집과 거래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트레이딩 카드 시장에 최근 여러 게임사가 뛰어들고 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쿠키런〉은 이미 실물 트레이딩 카드 게임을 선보였고, 〈PUBG: 배틀그라운드〉도 카드 게임 개발사 카드몬스터와 함께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게임사들은 왜 실물 트레이딩 카드 게임에 주목하고 있을까요.
담뱃갑 속 판지에서 시작된 카드 수집 문화
트레이딩 카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의외의 출발점을 만나게 됩니다. 1880년대 미국의 담배회사들은 담배가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얇은 판지를 넣었고, 그 위에 인기 스포츠 선수의 사진을 인쇄했습니다.


[1880년대 담뱃갑에 동봉된 야구선수 카드. 출처: 미국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담배를 보호하기 위해 넣은 판지로 시작했지만, 스포츠 선수 카드가 되자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카드 한 세트를 완성하기 위해 담배를 거듭 구매했고, 버려지기 마련이었던 포장재는 모으고 싶은 물건이 됐습니다.
이후 껌 회사 톱스(Topps)가 껌과 함께 야구선수 카드를 판매하면서 카드는 점차 독립적인 수집 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 좋아하는 선수를 카드로 간직하고 모으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카드에 담기는 대상도 영화와 만화, 게임 캐릭터로 넓어졌습니다.
모으는 카드에서 함께 노는 카드로
1993년 등장한 게임 〈매직 더 개더링〉은 최초의 트레이딩 카드 게임으로 꼽힙니다. 카드를 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카드를 직접 조합해 상대와 겨루는 방식을 선보였습니다. 카드 한 장 한 장에 고유한 능력이 부여되고 카드 조합에 따라 다양한 전략이 더해지며, 수집의 즐거움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게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흐름은 1996년 일본에서 출시된 〈포켓몬 카드게임〉으로 본격 대중화됐습니다. 포켓몬이라는 친숙한 IP를 바탕으로 좋아하는 캐릭터를 모으고, 필요한 카드를 교환하고, 직접 만든 덱으로 대결하는 재미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미국에서 발매된 포켓몬 카드게임 카드팩. 출처: Bulbapedia]
게임사는 왜 다시 카드를 만드는가
최근 게임사들은 게임 속 캐릭터와 세계관을 화면 밖으로 확장하는 방법으로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에 다시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팬들은 게임으로만 접하던 IP를 직접 손에 쥐고 즐기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카드도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간직하려는 팬에게는 소장품이 되고, 희귀한 일러스트를 찾는 사람에게는 수집품이 되며, 덱을 짜서 대전하는 재미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게임이 됩니다. 원작의 장르나 조작 방식이 맞지 않았던 사람도 카드 게임에는 흥미를 느낄 수 있고, 게임을 떠난 팬도 좋아했던 캐릭터의 카드를 계기로 다시 IP와 관계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 IP를 카드로 만들 수 있는가’보다 ‘팬들은 우리 IP의 무엇을 카드로 갖고 싶어하는가, 그리고 그 카드로 어떤 경험을 하게 할 것인가’여야 합니다. 팬들이 카드에서 원하는 것이 특정 캐릭터인지, 세계관의 미적 매력인지, 기억에 남는 장면과 플레이인지에 따라 카드에 담아야 할 내용과 그다음 경험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카드 다음의 경험을 설계하는 일
라이엇게임즈가 〈리프트바운드〉를 출시하며 공들인 것은 카드 자체만이 아닙니다. 카드를 처음 접한 사람이 게임의 규칙을 익히고, 직접 덱을 만들어 다른 플레이어와 대전할 수 있도록 출시 이후의 경험을 촘촘히 설계했습니다.
전국 TCG 전문 매장에서 매주 열리는 ‘넥서스 나이트’는 플레이어가 카드 게임을 배우고 상대를 만나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플레이를 시작한 사람은 스토어 예선과 오픈 예선, 코리아 메이저로 이어지는 대회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처음 카드를 펼쳐보는 순간부터 정기적인 플레이와 경쟁까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쿠키런: 브레이버스〉도 카드숍을 중심으로 플레이 경험을 넓히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대회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데 이어, 2027년 유럽 출시 후에는 현지 카드숍에서 공인 경기 프로그램 ‘브레이브 리그’를 운영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두 사례에서 인상적인 점은 카드를 출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팬이 그 카드로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까지 구체적인 경험을 설계했다는 것입니다. 규칙을 배우고, 덱을 만들고, 다른 사람과 대전하고, 다시 매장과 대회를 찾는 흐름이 만들어지면 카드는 한 번 모으고 끝나는 상품이 아니라 계속 돌아오게 되는 게임이 됩니다. 새로운 카드와 다음 대회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IP를 즐기는 경험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WEMADE VIEWPOINT
실물 카드는 게임 IP를 화면 밖으로 확장해 온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그 의미는 단순한 소장품에 머물지 않습니다. 팬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카드를 펼치고, 전략을 겨루고, 경험을 나누는 순간 카드는 디지털 세계와 현실을 연결하는 오프라인 인터페이스가 됩니다.
결국 게임 IP의 확장은 무엇을 상품으로 만들 것인가를 넘어, 팬들이 IP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고 서로 만나며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접점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수집을 넘어 게임 밖으로 확장되는 경험
우리가 카드 한 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손에 넣는 소유감, 원하는 카드를 찾아 교환하는 과정, 직접 만든 덱으로 겨루는 전략, 같은 취향의 사람과 마주 앉는 즐거움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콘텐츠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지금의 시대에도 카드는 함께 즐기는 실물만의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게임사들이 다시 카드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카드는 게임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현실로 이어주고, 팬들이 IP를 즐기는 방법을 하나 더 만들어 줍니다. 카드 한 장은 작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경험은 게임 밖으로 오래 확장될 수 있습니다.